2005년 여름 끝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늦은 밤 한 술자리에서 민주노동당 가입 원서를 썼습니다. 그리고 당원번호를 받았지요. 84018. 십만 당원을 바라보며 장밋빛 미래를 열어가는 진보정당에 가입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제 이름이 박힌 당원증을 지갑 깊숙이 넣으면서요.
당적문제
제 거주지는 은평구이지만 당적은 마포구로 등록 했습니다. 처음 당 활동을 시작할 때 모르는 사람이 많은 은평구보다는 같이 활동하는 청년회 회원들이 많은 마포구에서 하는 것이 더 좋을 거라는 선배들의 의견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소를 다솔선배의 집으로 올렸지요. 전 다솔선배의 동거인으로, 신수동 분회원이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여기에 별로 문제의식이 없었습니다. 당적이니 뭐니.. 사실 이런 것조차 잘 몰랐던 어리버리한 당원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조금씩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당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제 소개를 할 때 “원래 은평구에 사는데 당적은 마포로 해놔서 마포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라고 하면 다들 어디 다른데 가서 그런 소리 하면 안 된다고 그러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스스로 바보 같기도 합니다. 잘 모르면 얘기를 하지 말던가, 아니면 처음부터 은평구 당원이 되는 게 맞는 것이니까요. 엄격히 말하면.. 아니, 사실 그대로 말하면 저는 현재 위장전입입니다. 제 집이나 직장이 마포에 있는 건 아니니까요. (더군다나 제가 다솔선배와 살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요즘 얘기하는「정파 패권주의에 따른 위장전입과 주소지 이전」논란 까지 언급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게 사실인지도 정확히 모르겠고요) 적어도 청년회 선배들이 그런 생각으로 저를 마포당원이 되게 한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이 문제를 명확히 하고 정정하고 싶습니다.
임시당대회 쟁점 사안
지난 2월 3일 임시당대회를 생중계로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NL이니 PD니 잘 모르겠고, 자세히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제가 주목한건 논쟁이 된 몇 가지 쟁점사안과 사람들의 태도였습니다.
1. 대선 패배의 원인과 의미 ⇒ 부분 수정과 삭제
네 개의 수정동의안 중 결국 통과된 수정안을 보면서 정말 저 사람들은 민주노동당을 끔찍하게도(!) 사랑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청년회에서도 뼈아픈 평가를 진행하는데, 하물며 당내 최고 의사결정기구라는 당 대회에서 대선 평가를 단지 '실망스러운 결과'라고 말할 수 있는 건가요. 2002년 지방선거 8%, 2002년 대선 3.9%, 2004년 총선 12.9% 득표에 10명의 의원을 당선시킨 민노당이지만, 이번 대선 결과는 고작 3%에 불과했습니다. 원내 의석 하나 없는 문국현 후보에게 더블스코어로 밀렸지요. 이런 참패를 실망스럽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참 우스웠습니다. 이렇게 실망스러운 정도였으면 왜 비대위까지 꾸렸는지 이해가 안가더군요.
2. 당내 쟁점 사안에 대한 재평가 : (소위)‘일심회’ 관련 당원 최기영, 이정훈의 행위는 명백한 해당행위 ⇒ 전체 삭제
두 당원의 제명문제가 당 대회에 오른 것이 지극히 정치적인 제스처란 건 다들 아실 겁니다. 국가보안법까지 들먹이며 핵심을 비껴가는 건 양측 모두 마찬가지라 봅니다. 어차피 국보법 폐지는 모두 동의하는 부분이지 않습니까. 비대위 측은 당규 위반이기 때문에 제명해야 한다고 하지만, 반대측은 비대위가 내놓은 자료의 신빙성과 투명성에 문제를 제기했고, 또 당사자(두 당원)가 결백을 주장(작성, 제출한 적이 없다)하고 있기 때문에 제명되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죠. 여하튼 중요한건 사실(fact)이 뭐냐는 건데. 일단 전 당원으로서 최소한 당사자의 의견을 듣는게 맞고, 또 그들이 아니라고 한다면(최기영의 소명편지 참고) 믿고 싶고, 믿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를 아연실색하게 만든건 당대회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태도였습니다. 찬성과 반대측의 치열한 공방전은 그렇다 쳐도, 어찌됐든 당을 살려야 하는게, 그리고 당 대회를 통해 다시 한번 힘을 모으는게 궁극적인 목적 아닌가요? 그런데 안이 통과되자마자 환호성을 지르고 기립 박수를 치는 모습은... 참 어이가 없고 씁쓸하더군요. 의견이 달라도 서로 끌어안지는 못할망정 자기네 의견이 통과됐다고 기뻐하는 모습이라뇨. 남은 사람들은 당 대회가 끝나기 전에 나간 심상정에 대해 뭐라 하지만, 저 같아도 먼저 나갔겠습니다. 그런 사람들하고 더 할 얘기가 있을까요?
3. 당내 쟁점 사안에 대한 재평가 : 북한의 핵 개발과 북핵 자위론 주장은 당 강령정신에 반함
위의 당원 제명문제와 더불어 이 사안이 겹치면서 종북이니 친북이니 하는 말들이 많습니다. 제가 종북주의자를 직접 본적이 없기 때문에 뭐라 말은 못하겠지만, 그런 사람이 일부 있다고 하니 있긴 있나봅니다. 없는데 있다고 우기는 것도 웃기고, 있는데 없다고 하는 것도 웃깁니다. 이 바닥이 망망대해도 아니고 살 부대끼고 사는 처지에 모른다고 잡아 땐다고 될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여하튼 이 문제는 차치하고, 북핵 문제에 대한 제 입장은 어떤 경우에든 핵이 용납될 순 없다는 겁니다. 북은 어쩔 수 없다고요? 소위 얘기하는 북핵 자위론이 진보정당이 할 소리인지 싶습니다. 북핵 문제나 북의 인권문제에 대해 이렇다 할 입장 표명을 하지 않는 (당에선 나름 했다고 하는데 그렇게 얘기할거면 차라리 안하느니만 못한 것 같습니다) 것에 대해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이런 태도가 친북 또는 종북이라는 오해 아닌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건 아닌지요.
그 밖에... 민노당의 배타적 지지단체에 대해
민노당의 분열과 함께 이를 더 비극적으로 만든건 소위 배타적 지지단체들의 입장 표명입니다. 생각해보니 ‘배타적 지지’라는 말이 참 웃기군요. 여하튼 그 중에 단연 최고는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상임대표의 특별호소문이었습니다. 2월 4일에 올라온 <일부 반북세력의 분열책동을 분쇄하고 민주노동당을 사수, 강화하자>란 글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지금 민주노동당의 미래는 오히려 그 어느 때 보다 밝다」란 문장은 차라리 애교이고 (이런 상황에도 미래가 밝다고 하는 그 무한한 긍정성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민주노동당의 성장에 겁을 집어 먹은 미국은 지난 2002년 총선 이후 민주노동당을 와해 말살하기 위해 악랄하게 책동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는 미국은 문국현과 같은 사이비진보세력을 내세워 민주노동당의 성장을 가로막으려 하였으며 대선 이후에도 민주노동당과 진보세력을 와해, 말살하기 위해 악랄하게 책동하고 있다.」여기까지. 너무 비상식적이라 더 이상 말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제 입만 아프죠.
더불어 청년회의 상급단체인 한국청년단체협의회의 입장표명에도 문제를 제기합니다. 지난달 31일에는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혁신을 이루기도 전에 신당 추진을 강행하는 것은 당의 분열을 기정사실화하는 배신행위이며 당 비대위가 단호한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성명했고, 2월 14일에는 천영세 직무대행과의 간담회에서 “보수 언론의 당 분열 책동에 대응하고 당 사수를 위한 집단 입당운동과 재정 모금운동을 전개하겠다. 심상정, 단병호, 노회찬 의원과 면담해 당의 단결을 설득하겠다” 고 했는데, 한청 내부에서 이번 일에 대해 제대로 된 논의와 합의점이 있었나요? 독단적인 성명인건가요, 아니면 우리 청년회에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건가요. 정치적 입장과는 별개로 심히 불쾌하더군요. 마치 한청 회원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말이죠.
당에 대한 입장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미 탈당한 사람들은 무소속으로 남아있던가 신당으로 가겠죠. 솔직히 민노당에 있기도 싫고 신당으로 가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당대회 이후 당 메인화면에 올라온 기사 <일부 탈당선동에도 실제 탈당자 1.5%에 그쳐>를 보니 또 어이가 없더군요. 탈당자가 전체의 1.5% 수준인 1351명으로 매우 미미하다고 하던데, 사람이 재산이라는 소수정당에서 이 숫자가 별 의미 없다는건지... 제대로 현실파악은 하지 못할 망정 편향적인 기관지를 더이상 보고싶지 않아 구독을 해지했습니다. 여하튼...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앞으로 당 활동을 할 자신이 없습니다.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그동안 네가 당에서 한 게 뭐가 있는데” 라고 하실 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되묻고 싶습니다. “그런 당신은 그동안 얼마나 잘 활동하셨나요?" 또 어떤 분은 "그럼 대안이 뭔데" 라고 하실지도 모릅니다. 근데 당에 남아있는다고 전망이 밝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주요인사들의 탈당도 그렇고, 권영길의원님은 이제 그만 대선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 주셨으면 좋겠는데 총선에 출마하실 생각인것 같더군요. 지역구 관리 시작하시고... 여튼 고민의 깊이와 방향은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서로 조율하고 되도록 합의점을 찾으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결국 선택은 자신의 몫이겠지요.
비당원인 신입회원이 많이 늘었지만 아직 청년회의 대부분은 민노당원입니다. 청년회칙에 공식적으로 명시하고 있진 않지만 민노당을 지지하고 연대집회와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분당이 된다면... 그쪽을 지지하는 사람이 아마 생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청년회 내부에서 소수자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설득’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니까요.
여하튼 저의 당에 대한 입장은 ‘당분간 유보’입니다. 그리고 글머리에 얘기한 것처럼 마포에서 은평으로 옮기겠습니다. 지금 제가 소속되어 있는 신수동 분회장님께 먼저 말씀드립니다.
Posted by 미디어분과

